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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을 건국하고 왕권을 강화시켜 자부심이 강해 외자로 개명하지 않은 태종 이방원(李芳遠)
 김민수
 2014-07-19 12:46:05  |   조회: 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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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을 건국하고 왕권을 강화시켜 자부심이 강해 외자로 개명하지 않은 태종 이방원(李芳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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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 4월 8일 명국(明國) 3대 황제(재위 1402∼1424)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의 칙유(勅諭)에는 “황제는 조선국(1393-1897) 국왕 3대 국왕 정적들을 제거하여 조선국을 건국하고 왕권을 강화시켜 자부심이 강해 왕으로 즉위하고 외자 이름으로 개명하지 않은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휘(諱) 이방원(李芳遠)에게 칙유(勅諭)하노라. 짐은 생각건대, 하늘은 밝은 도(道)가 있어, 순(順)히 하는 자는 창성(昌盛)하고, 거스르는 자는 망하나니, 그 응험(應驗)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아서, 소연(昭然)하기가 심히 두려운 것이다. 옛 날 우리 황고(皇考)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화하(華夏)에 군림(君臨)하시어 만방(萬方)을 차지하시고,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게 부지런하여, 공(功)을 이루고 다스림에 이르러, 무릇 일월(日月)이 비치는 땅에 혈기가 있는 자는 높이고 가까이 하지 않음이 없었다. 조선은 바다 모퉁이에 밀접하여 있어도, 성교(聲敎)가 먼저 미쳐,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생각하여 직공(職貢)을 다하기를 한결같이 하니, 우리 황고께서 회유(懷柔)의 은총을 베풀어 물품을 주기를 거듭하였다. 짐이 즉위한 처음에 곧 조유(詔諭)를 보냈더니 3대 국왕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휘(諱) 이방원(李芳遠)이 과연 천도(天道)를 공순(恭順)히 하고, 우리 황고의 깊은 은혜를 생각하여, 곧 배신(陪臣)을 보내서 표문(表文)을 받들어 조공(朝貢)하였으니, 예의(禮意)의 부지런함이 족히 가상할 만하다. 이제 특별히 사신을 보내어 조선 국왕의 금인(金印)과 고명(誥命)을 주어, 그대로 하여금 은총과 영광을 빛내게 한다. 아아! 오직 덕스럽고 순한 것이 자기를 바르게 하고, 오직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 하늘을 감동할 수 있으니 간사하지 말고, 사치를 숭상하지 말고, 총명한 체하여 전장(典章)을 폐하지 말고, 도망한 사람을 받아들이어 예전 교훈에 어그러지게 하지 말고, 대대로 번방(藩邦)을 지켜서 그대 땅 이토(爾土)를 다스려 편안케 하여, 동방(東方)의 신민(臣民)으로 하여금 모두 복택(福澤)에 젖게 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그러므로 칙유(勅諭)하는 것이니 마땅히 지극한 회포를 체인(體認)하라.”하였다.



1476년 4월 20일 서거정이 성종에게 아뢰기를, “명국(明國)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인 고황제(高皇帝)가 우리나라를 허물이나 잘못을 꾸짖고 나무라는 견책(譴責)하려고 하여, 무릇 표문(表文)·전문(箋文)을 올릴 때면 황제,국왕,조상의 이름에 쓰인 글자,음이 비슷한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휘피(諱避)하는 글자를 많이 만들어 범할 수 없게 합니다. 신이 승문원(承文院)의 휘피하는 글자의 모양을 가지고 중국 사신에게 보이면서 묻기를, ‘원(元)자·인(仁)자·덕(德)자는 글 뜻이 아름다운데도 역시 휘피하여야 하니, 지금 모두 범할 수 없는가?’ 하니, 명국(明國) 사신이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보이며 말하기를 ‘황제(皇帝)는 휘(諱)가 ‘견유(見濡)’이나 두 글자 이름에서 한 글자는 휘피하지 아니하니, 견(見)자만 쓴다면야 무엇이 해롭겠으며, 고황제(高皇帝)는 휘(諱)가 원장(元璋)이나 원년(元年)의 원(元)자야 어찌 일컬을 것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런 글자들은 지금 표문(表文)을 올릴 때에 시험적으로 써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이 또 묻기를, ‘연(燕)자는 지금도 역시 피하여야 하는가?’ 하니,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마땅히 피하여야 한다.’ 하였는데 지금 중국이 연(燕)에 도읍한 때문이라 여겨집니다.”하므로, 성종이 현석규(玄碩圭)에게 이르기를, “휘피(諱避)하는 글자를 시험적으로 써 보는 데 대한 가부(可否)를 널리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하였다. 4월 28일 성종이 전교하기를, “사대 문서(事大文書)의 휘피(諱避)하는 글자는 그 사이에 또한 휘피에 마땅하지 않은 것이 있으므로 모두 피하여 쓰지 아니하면 제술(製述)하는 즈음에 매우 어려우니, 그 후의 명국에 가는 입조(入朝)하는 사신(使臣)이 예부(禮部)에 나아가 일의 시비(是非)나 의문나는 점에 대해 살피거나 물어서 바로잡는 질정(質正)하여 오게 하라.”하였다.



1495년 1월 21일 홍문관(弘文館)에서 서계(書啓)하기를, “이제 대신(大臣)들이 2명(二名)을 이름 두 글자 중에서 한 글자를 피하여 쓰지 않는 편휘(偏諱)하지 않는 예(例)에 의거하여 ‘황조(皇朝)에서 인종(仁宗)을 칭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인종(仁宗)을 칭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오나, 주공(周公)의 시호를 문공(文公)이라 불렀고, 위(衛)나라에 장공(莊公)이 있는데도 후손이 또한 장공(莊公)이라 불렀으며, 연(燕)나라에 문공(文公)이 있는데도 후손이 또한 문공(文公)이라 불렀고, 제(齊)나라에 장공(壯公)이 있는데도 후손이 또한 장공(莊公)이라 불렀습니다. 시호를 올리는 법은 주(周)나라에서 시작하였음에도 주나라 제후(諸侯)의 자손들이 오히려 조종(祖宗)의 시호를 피(避)하지 아니하고 모두 2명(二名)을 범하였으니, 어디에 2명(二名)을 편휘(偏諱)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사옵니까. 자손은 조상에 대하여 피하여야 함에도 피하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나라가 명국(明國)인 중조(中朝)에 대해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또 천자(天子)에 위열왕(威烈王)·신정왕(愼靚王)이 있는데도 제후가 또 위열(威烈)·신정(愼靚)을 일컬었으니, 2명의 예(例)라고 함이 옳을 것입니다. 조(祖)라 하고 종(宗)이라 함은 역대(歷代)로 오는 통칭으로 시호와는 관계가 없사온데, 인종(仁宗)의 인(仁) 한 자(字)만을 가지고 어찌 2명(二名)의 예에다 붙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명분(名分)으로써 이 것을 논한다면 마땅히 태묘(太廟)에 부묘한 신주(神主)에 쓴 임금의 이름인 묘호(廟號)를 피해야 하옵니다. 이미 묘호도 피하지 않았는데, 반드시 피하지 아니하여도 될 자를 피하고자 함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명국(明國)인 중조(中朝)와 우리 나라의 역대는 모두 무궁한 데에 이를 것이온데, 시명(諡名)에는 한이 있으니 명국(明國)인 중조(中朝)의 묘를 피한다면 무슨 글자로 칭해 올리리까. 신 등은 옛 것을 상고하고 지금 것을 징험하였으나, 다같이 시호(諡號)를 피휘(避諱)한 글이 없었으므로 밝히지 않을 수 없어 반복하여 논계(論啓)하옵니다. 이제 대신(大臣)이 선유(先儒)의 ‘부정한 시호를 올림은 충효를 아는 자로서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는 말을 인용함에 이르러서는 신들을 가리켜 말함이오니, 선유(先儒)의 이른바 부정한 시호라는 것이 어찌 이 것을 이르는 것이겠습니까. 신 등이 차마 들을 수 없으므로 마음에 참으로 미안하오니, 어떤 사건에 관련되어 다른 사람에게 혐의(嫌疑)를 받으면 그 혐의를 피하기 위해 사건과 관련 있는 모든 언행(言行)과 출퇴(出退)를 삼가는 피혐(避嫌)을 청합니다.”하니, 연종(연산군 묘호 추상)이 전교하기를, “피혐(避嫌)하지 말라.”하였다.


1573년 2월 5일 류희춘이 또 나아가 아뢰기를, “어젯밤에 경서(經書)의 판본(板本)에서 오자가 있는 곳은 당본(唐本)에 따라 고쳐야 한다는 성지(聖旨)를 면대하여 받았는데, 참으로 전하께서 분부하신 것이 마땅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피휘(避諱)하느라 다른 글자로 갈아 쓴 글자라면 책장의 맨 윗부분인 지두(紙頭)에 써야 하겠습니다.”하니, 선조가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판본의 오자는 후래의 착오이고 주자(朱子)의 본(本)이 아니나, 피휘하여 갈아 쓴 것은 주자(朱子) 당시에 한 일이니, 지두(紙頭)에 적어야 한다.”하였다. 1602년 10월 9일 장령 권진(權縉), 정언 이유홍(李惟弘)이 아뢰기를, “평상시 복시에는 오직 당초의 초시 방목(初試 榜目)에 의하여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시취(試取)하기 때문에 과거에 참가한 응시자인 거자(擧子) 유씨(兪氏)의 이름이 피휘(避諱)를 범하였는데도 범연히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월을 올리는 입계(入啓)했던 것입니다. 살피지 못한 실수는 신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신들을 관리를 맡은 바 직임에서 갈아 내어 쫓는 체척(遞斥)하소서.”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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