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경상북도 칠곡(漆谷)은 역사 지명 팔거(八莒) 환원해야
 김민수
 2015-01-06 08:59:12  |   조회: 6767
첨부파일 : -
경상북도 칠곡(漆谷)은 역사 지명 팔거(八莒) 환원해야







http://blog.naver.com/msk7613







일본군국주의 통감부가 개칭한 후 왜관으로 부르고 있는 팔거읍(八莒邑)은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이라 하였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쳤다. 고려국 초에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의 음이 전하여 팔거(八莒)로 변하였다.1594년 3월 4일 비변사가 아뢰기를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이 팔거(八莒)에서 떠나 전라도로 철회했습니다.”하였다. 1640년 5월 25일 인조가 가산성(架山城)의 읍명(邑名)을 칠곡부(漆谷府)로 정하고 윤양(尹瀁)을 부사로 삼았다. 1678년 8월 13일 허적이 말하기를 “경상 감사(慶尙 監司) 이단석(李端錫)이 칠곡읍(漆谷邑)에 살면서 민원(民願)을 따라 팔거현(八莒縣)에 이설(移設)하는 일을 가지고 계문(啓聞)하였는데, 칠곡산성(漆谷山城)은 바로 인조조(仁祖朝)에 창설하였으며, 그 지세가 가장 뛰어난 요지(要地)이니, 이제 경솔하게 이거(移居)하기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1819년 5월 25일 순조가 칠곡부(漆谷府)를 팔거읍(八莒邑)의 팔거창(八莒倉)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경상북도 칠곡(漆谷)의 왜관은 낙동강 하류에서 뱃길을 따라 올라온 왜물(倭物)을 한성에 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었던 창고인 왜물고(倭物庫)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왜인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왜관은 부산포(초량), 제포(진해), 염포(울산)에 있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두모포, 절영도, 가배량 및 초량, 김해, 창원의 10여 개 소를 설치하였다. 1906년 일본군국주의 통감부가 대륙 침략을 위한 한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낙동강변의 넓은 지대에 있는 팔거(八莒)의 철도역을 왜관으로 부르면서부터 팔거(八莒)를 왜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팔거(八莒)는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이라 하였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쳤다. 고려국 초기에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의 음이 전하여 팔거(八莒)로 변하였다.경상북도 칠곡(漆谷)은 일본군국주의가 대륙 침략을 위한 한부선 철도 역 이름으로 붙인 왜관을 고례,백제,신라의 3한국시대 이후 계속 사용한 역사 지명인 팔거(八莒)로 명칭 환원하여야 한다.
2015-01-06 08:59:12
1.244.208.6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로143번길 51 천산스카이빌아파트 상가 2층 201호<서천편집실>
  • 충남 보령시 구시11길 21번지 <보령사무소>
  • 대표전화 : 041-953-8945
  • 팩스 : 041-953-894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찰우
  • 명칭 : 주식회사 뉴스스토리
  • 제호 : 뉴스스토리
  • 등록번호 : 충남 아00101
  • 등록일 : 2010-11-24
  • 발행일 : 2010-11-24
  • 발행인 : 이찰우
  • 편집인 : 이찰우
  • 뉴스스토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스토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dnews@hanmail.net
[IDI] 인터넷신문자율공시 참여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