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서 생기는 호칭이 아닌 한 생명을 살리는 존재.
삶의 근본이 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책임감과 구속을 싫어하고 항상 스스로 냉혈아라 생각하던 내가 엄마가 된 것이다. 사실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 결혼이 망설여졌다.
유년시절부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엄마는 이상하게 따뜻했던 느낌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불만스런 투로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인데 왜 그러냐는 의문이다.
그 시대의 엄마들은 삶이 고달파서 그랬다고. 엄마의 마음은 항상 똑같은 거라고. 그런데 나의 가슴은 항상 추웠다. 그렇게 추울 때마다 조경란의 책 ‘식빵굽는 시간’속에 들어가 번데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위안을 받았다.
항상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따뜻하게 안아주고 정이 깊은 그런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남편은 가슴에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 충분히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해줘 결심이 서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1년 후 첫 아이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34개월 된 아들과 뱃속에 5개월된 태아의 엄마가 되어있다. 사실 이야기는 여기에서 해피앤딩으로 끝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동화책과 다르다.
새 생명을 얻고 새의 둥지처럼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워킹맘.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77만원세대의 결정은 맞벌이, 워킹맘이었다.
아이를 시설이나 보모에게 맡긴 후 정말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물론 전업주부로 항상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고 좋은 엄마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간절히 엄마를 원하는 것을 떨쳐내고 뒤돌아 서야할 때 아이가 툭하면 아팠을 때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삶에 지쳐서 아이에게 내 엄마가 했던 방식으로 짜증을 내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 자책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
세상살이에는 정답은 없다. ‘못나도 울 엄마’라는 말처럼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하나밖에 없는 엄마인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엄마의 허상에 나스스로를 가두고 아이를 짜 맞출 생각은 없다. 나도 인간인지라 아이가 항상 예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내 몸이 힘들면 만사가 귀찮아 혼자였을 때를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
육아일기 연재 제의를 받고 여러 주제를 생각하며 자칫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엄마의 모범으로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교훈을 주려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난 그저 나의 사는 이야기, 엄마로서의 모습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세상에 사랑받기 위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