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 선생의 꿈과 통일
월남 이상재 선생의 꿈과 통일
  • 임재근
  • 승인 2016.10.2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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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임재근 교육연구팀장

▲ 임재근
1850년 오늘(10월 26일)은 월남 이상재 선생이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나신 날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제국주의 세력들이 침략야욕으로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구한말 시기, 독립협회를 이끌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민권 운동의 최선두에 섰다. 일제가 나라를 강점 한 이후에는 3.1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등 항일운동에 나섰다. 친일적인 인물들이 운영하던 조선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해 조선일보를 친일적 성향을 탈피해 민족지로 성격을 바꾸었다.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의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노환으로 병석에 있었지만, 신간회 회장직을 거부하지 않았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그는 일제와 타협한 적이 없고 늘 일제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그는 몇 번이고 옥고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독립운동을 위해 바쳤다.

지금 한반도는 국제적으로 본다면 이상재 선생이 왕성한 활동을 했던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우려되고 걱정되는 것은 1세기 전 청일전쟁, 러일전쟁처럼 주변 나라들의 이해 다툼으로 인해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옛날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바다(해양)로 향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손잡고 대륙세력(중국과 러시아)의 해양으로의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일본에게 당근을 주기 위해 일본이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전쟁할 수 있는 일반 국가’로 가려는 시도를 묵인하고 있다.

청년의 등불, 월남 이상재 선생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나라의 독립’이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이 바랐던 독립은 오늘날처럼 ‘분단된 상태의 독립’이었을까? 당시 이상재 선생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도 ‘분단’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1천년 동안 통일된 민족으로 살고 있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꿈은 나라의 ‘독립’이었지만, 그 꿈을 현재로 연장시켜 현재화시킨다면 그의 꿈은 바로 외세의 간섭이 없는 ‘통일독립국가’ 수립일 것이다.

한 세기 전에는 하나의 나라였지만, 지금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남과 북은 전쟁을 겪었고, 분단된 기간도 일제강점기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 세기 전에 비해 지금의 한반도는 더욱 암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강대국들이 그들의 이익을 챙기려 할 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지경학적(地經學的) 조정자로 유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바로 남과 북이 비록 분단된 상태이지만,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고, 협력할 때만이 가능하다. 바로 월남 이상재 선생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이상재 선생의 업적은 수없이 만지만, 그중 대표적인 업적으로 바로 항일과 독립을 위한 좌우합작의 ‘신간회’운동을 들 수 있다. 지금 바로 분단된 남과 북이, 통일과 자주를 위해 합작하는 ‘New 신간회’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북한을 반대하고,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낡은 틀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서, 이제 남과 북, 그만 싸우고 이상재 선생이 했던 것처럼 차이는 뒤로하고, 서로의 공통점을 앞세워 ‘하나’가 되어 민족의 이익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상재 선생의 꿈을 현재의 시점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신(臣)은 비록 만번 주륙을 당할지라도 이런 매국의 도적들과는 조정에 같이 설 수 없사온 즉, 폐하께서 만일 신이 그르다고 생각 하시면 신의 목을 베이사 모든 도적들에게 사례하시고 만일 옳다 여기시면 모든 도적의 목을 베이사 온 국민에게 사례를 하소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날 고종(高宗)은 이상재를 불러 의정부 참사관을 명했다. 하지만 이상재 선생은 고종의 어명을 거역하고 이 같이 말하며, 단호하게 물러설 뜻을 밝혔다. 요즘 우리 민족의 지도층에는 권력과 불의에 항거하는 이들을 찾기가 어렵다. 민족의 지도가가 가져야 할 덕목을 이상재 선생의 이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 누군가는 태어났지만, 반대로 오늘 죽은 사람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고, 일본 초대 통감을 지냈던 민족의 숙적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안중근 의사는 이 사건 때문에 다음 해 3월 26일, 여순(뤼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처럼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웠거나 월남 이상재 선생처럼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의 덕분에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외세에 의해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다. 지금은 분단을 해소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해법인 통일을 위해서 통일운동에 헌신하는 분들이 많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상재 선생과 같은 민족의 지도자 같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이끌었지만, 그분들만이 독립운동에 나섰던 것은 아닌 것처럼, 월남 이상재 선생의 현재의 꿈 통일을 위해서 모두가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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