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언제나 옳다.
배움은 언제나 옳다.
  • 최추월
  • 승인 2018.10.17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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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찾아가는 행복서천 문해교실 '서천읍 두왕리' 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즐겁게 살아가는 최추월씨

살랑이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책 읽기 좋은 가을날. 찾아가는 문해교실에서 만난 최추월(서천읍 두왕리, 87세)씨.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몸이지만 문해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대학생 부럽지 않다.

최씨는 일제강점기 서천읍 봉남리에 위치한 서남초등학교에 다녔다. 일제의 민족분열 정책으로 학교에서 우리글 대신 일본글을 배웠다. 심지어 우리나라 선생님조차 학생들이 무심결에 쓴 우리말에 혼을 내는 엄중한 상황이었다. 학교에서는 솔가지를 따오라고는 등 학업외의 일을 종종 시켰고 학교에 일본 군인이 주둔하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최씨는 일본글을 배우는 게 힘들었다며 민족과 한글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최씨가 5학년이 됐을 때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비로소 해방이 됐고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씨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즐거웠다’이다. 최씨의 아버지는 무식이 평생의 한이었다. 그래서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교에 보냈다. 최씨는 어린 시절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자체가 좋았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 수 있는 ‘학교’가 좋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즐겁게 살아가는 최추월 씨.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즐겁게 살아가는 최추월 씨.

“학교에서 일제해방 축하 기념으로 부여 낙화암으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그곳에서 선생님한테 여러 가지를 배우고 구경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는 수학여행. 최씨는 그 당시를 추억하며 미소를 짓는다.

최씨는 일제해방 이후 2년 동안 한글을 배워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었고 종종 글을 몰라 곤란을 겪는 주변인을 도왔다. 그래서 문해교실 개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해교실에서 지역주민 대상으로 연극을 무대에 올리게 됐는데 해설사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 이후 문해교실에 다니게 됐다.

최씨는 “문해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을 읽어보면 좋은 글귀가 너무 많아 가슴에 새기려 노력한다.”며 “집에서도 공책에 적은 문구들을 종종 읽으며 익힌다.”고 한다.

서천읍 두왕리 문해교실 운영 장면.
서천읍 두왕리 문해교실 운영 장면.

최씨는 문해 교실이 단순히 문맹인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움을 더해갈수록 글에 담겨진 의미와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며 그 이상의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의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최씨는 나이와 시대를 불문하고 학문을 익히고 닦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최씨를 만나며 공자의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가르침의 뜻이 알아지는 순간이었다.

최추월 씨의 글.
최추월 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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