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로 삶이 깊어지는 이영자씨
“밖에 나가면 자꾸 몸이 떨리고 추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 방안에서만 지냈죠. 야학에도 잠깐 갔었는데 병이 나서 결국 포기했어요.”
찾아가는 문해교실 마산문화활력소에서 만난 이영자(마산면 마명리·76)씨. 그녀의 어린 시절은 심한 횟배앓이로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재잘거리며 웃고 뛰어 놀고 싶었다. 학교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녀에게 평범한 일상 그 무엇도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시집을 왔는데 시아버지가 서당을 하고 있었어요. 어린 학생들 사이에 머리가 하얀 어른들도 앉아 있더라고요. 그때 나이가 들어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당시 이영자씨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배움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고된 시집살이와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야 했던 농사일에 그 생각은 금방 지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 전영자(75)씨가 ‘벽에 붙이는 한글공부’를 사 왔다. 전영자씨는 글을 몰라 답답해하는 이영자씨가 안타까워 글을 조금씩 가르쳐 줬다. 어느덧 그 배움의 시간은 20여년이 흘렀고 현재는 문해교실에 함께 다니고 있다.
“그 당시 한글공부를 시작했는데 정말 배우고 싶더라고요. 책이 없어서 전화번호부로 동네사람들 이름을 익히며 공부했어요. ”
이영자씨에게 늦게 찾아온 학구열. 피곤한지도 모르고 날을 세우며 공부했다. 그리고 월기교육문화원과 시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 교실에 다녔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마을 사람들 몰래 다녔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문맹인 마을 사람들도 함께 다녔다. 찾아가는 문해교실은 2016년부터 다니고 있다.
이영자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배운 한글로 지금은 타 지역에서 버스를 탈수 있고 텔레비전 자막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전영자씨의 권유로 외우게 된 주민번호는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전영자씨는 현재 문해교실에서 보조교사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영자씨에게 전영자씨는 ‘은인’이자 ‘영원한 선생’이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보면 먼저 챙겨지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은 문해 교실에서 다른 학습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제도 전영자씨가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받아쓰기 하자며 불러줘서 내가 썼더니 이제는 곧 잘한다고 칭찬해줬어요”라며 은근 자랑하는 이영자씨.
전영자씨는 ‘이영자씨가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오히려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뭐든지 평생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며 배움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이제 겨울 다가오니까 슬슬 공부 시작해야지”라며 마주보고 여고생처럼 수줍게 웃는 두 분.
눈 쌓여가는 겨울밤, 삶이 깊어지는 공부를 도란도란하는 두 분의 소리가 벌써부터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