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고 ‘나’를 쓰는 노옥녀 씨

꽃
노옥녀
우리 집 마당에 꽃이 만발했어요.
먹는 것도 아니고
입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봐도 싫증이 안나요.
꽃피면 봄 인줄 알고
꽃 지면 겨울인 줄 알고
꽃 같은 마음으로
꽃과 함께 살았는데
이제 꽃보다 못한
늙은 사람이 되니
참 허무하네요.
사람은 늙으면 보기 싫은데
꽃은 시들 면 씨를 맺네요.

지난 10월 5일 서천군 평생학습센터에서 개최된 서천군 문해 학습자 시화전에 걸린 노옥녀(83세, 시초면 선암리)씨 시다.
“할머니 시 참 잘 쓰시네요.”라는 주위의 찬사에 노옥녀씨는 수줍어한다.
“그냥 선생님이 써보라고 해서 내 삶의 이야기를 쓴 것뿐이다.”는 노옥녀씨.
그런 노옥녀씨를 보며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 등장하는 작은 시인이 생각났다. 그림책 ‘프레드릭’은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들쥐들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작품 속 작은 시인 ‘프레드릭’은 일반 들쥐들이 먹이를 모으는 것과 달리 생각을 모으고 색깔을 눈에 담으며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이야기로 겨울을 준비한다.
노옥녀씨는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다. 결혼의 행복도 잠시, 시숙 부부가 폐병으로 돌아가시자 그 자녀까지 14명의 식구를 건사해야 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강원도까지 가서 장사를 하고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성당에서 잠을 자는 등 그동안 그녀의 삶은 다른 그 무엇 하나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겨울, 시초면 선암리에 문해교실이 개소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노옥녀씨는 문해교실에 다니며 다양한 글과 책을 접하고 다른 세상을 만났다. ‘프레드릭’처럼 생각을 모으고 일상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들을 마음에 담으며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봄에 대한 시를 써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노옥녀씨. 최근 선생님의 권유로 그동안 가슴 한편에 꼭꼭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모아 소소하게 자서전을 썼다.
‘문해교실에 다니며 초등학교 때도 알지 못한 공부의 맛을 느끼고 있다.’는 노옥녀씨는 일기를 쓰며 일상을 돌아보고 시를 쓰며 삶을 더 아름답게 다듬고 있다. 노옥녀씨는 ‘늦게라도 다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어느덧 2018년도 한 달 남았다. 온통 잿빛으로 변하는 추운겨울. 사람들은 김장을 하고 난로를 준비하는 등 월동준비로 분주하다. 이와 더불어 작은 시인 ‘프레드릭’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시기다.
시초면 선암리 문해교실 학습자들은 노옥녀씨의 마당을 비췄던 햇살과 봄부터 피고 진 꽃들, 그리고 겨울밤을 따스하게 수놓을 삶의 이야기들로 그 어느 해보다 더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