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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실록(1897년 10월 10일 - 10월 13일)
 김민수
 2014-02-10 08:38:07  |   조회: 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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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실록(1897년 10월 10일 - 10월 13일)









http://blog.naver.com/msk7613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1930-5년 사관(史官)이 매일 기록한 사초(史草) 등 사료(史料)의 수집(蒐集) 및 취사선택, 편수(編修), 수정,첨삭하는 감수(監修)한 일본군국주의 통감부, 총독부 일지(日誌) 성격의 고종순종실록 편찬위원(編纂委員)은 위원장은 시노다 지사쿠이며 감수위원(監修委員)은 경성제국대학 교수 오다 쇼고, 나리타 세키나이이며 사료수집위원(史料 蒐集委員)은 기쿠치 겐조이며 서무위원(庶務委員)은 스에마쓰 구마히코, 시가 노부미쓰이며 회계위원(會計委員)은 사토 아키미치이며 감수 보조위원(監修 補助委員)은 총독부 이사관 에하라 젠쓰이이며 편찬 보조위원(編纂 補助委員)은 총독부 도경시 하마노 쇼타로, 총독부 군서기 미즈바시 후쿠히코이며 사료 수집 보조위원(史料 蒐集 補助委員)은 기타지마 고조이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사료(史料) 수집(蒐集) 및 취사선택,편수(編修),감수(監修)한 고종순종실록은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1897- )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1906-1945)에 대한국(1897- ) 역사를 왜곡하고 통감부, 총독부, 일본 왕실, 일본군 기사를 중심으로 편수(編修),감수(監修)하여 편찬한 일본군국주의 통감부, 총독부 일지(日誌)이므로 통감부, 총독부, 일본 왕실, 일본군 기사를 삭제하고 대한제국 황실 기사를 중심으로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실록을 수정, 편집하였다.






1897년 10월 10일 고조(高祖 Gojo:1863 – 1897) 대군주 폐하(大君主 陛下)가 빈전(殯殿)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고 나서 태극전(太極殿)에 나아가 황단(皇壇) 고유 천제에 쓸 향(香)과 축문(祝文)을 친히 전하였다. 시임 대신(時任 大臣)과 원임 대신(原任 大臣)이 연명 차자(聯名箚子)를 올려, ‘태묘 사직의 친향(親享)은 섭행(攝行)하도록 하소서.’ 라고 청하니, 비답하기를, “이번에 성대한 전례(典禮)를 반드시 몸소 고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는 경들이 거의 묵묵히 알고 있을 터인데, 오히려 다시 이처럼 연명으로 간청하니 또한 어찌 경들이 왜 깊이 헤아리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는가? 할 수 없이 따르기는 하지만, 정례(情禮)로 보나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하였다. 칙령(勅令)을 내리기를, “대신(大臣)들의 연명 차자(聯名箚子)에 대한 비답을 이제 내려 보냈다. 태묘(太廟), 사직(社稷)의 고유제(告由祭)는 대신을 보내어 섭행(攝行)하도록 하라.”하였다. 또 칙령을 내리기를, “의정부 의정(議政府 議政) 심순택(沈舜澤)을 임명하여 명헌태후(明憲太后)에게 보(寶)를 올릴 때와 황후(皇后)와 왕태자비(王太子妃) 민씨(閔氏)를 황태자비(皇太子妃) 책봉할 때의 정사(正使)로,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영수(金永壽)를 임명하여 부사(副使)로 삼도록 하라.”하였다. 태의원 경(太醫院 卿) 조동면(趙東冕)을 궁내부 특진관(宮內府 特進官)에, 정2품(正二品) 조병호(趙秉鎬)를 태의원 경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3등에 서임하였다.



6품인 편상훈(片相薰)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성인(聖人)으로서 더없이 높은 칭호를 받아들였습니다. 대신(大臣)들이 정청(庭請)하던 날에 백성들의 마음을 굽어 따르고 하늘의 뜻을 우러러 받들어 윤허하는 말씀을 연이어 내리고 전례(典禮)를 정하였으니, 폐하의 신하와 백성된 사람치고 누군들 오늘날의 큰 경사를 보게 된 데 대하여 기뻐하면서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신은 명(明) 나라 조정의 후손으로서 일찍부터 명나라를 높이는 큰 의리를 품고 있었고 정통이 정해지지 않은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명나라의 기풍이 떨쳐지지 않은 데 대해서는 뜻있는 선비들이 격분하였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淸) 나라가 서서는 온 나라 사람들이 절통해 한 지 이제 200여 년이 되었습니다. 어찌 오늘에 황제의 칭호를 올리며 황제의 자리에 오르리라고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응행 절목(應行 節目)에서 다시 명나라의 옛 제도를 보게 되니, 그 기쁘고 경사스러운 마음은 오직 그때와 다름이 없습니다. 아! 대단합니다. 신은 대일통(大一統)의 뜻으로 말하겠습니다. 요(堯) 임금은 순(舜) 임금에게 전해 주고 순 임금은 우(禹) 임금에게 대를 물려주었으며 우 임금은 탕왕(湯王)에게 전해 주고 탕왕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한(漢) 나라, 당(唐) 나라, 송(宋) 나라, 명(明)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칭호를 높이며 그 정통을 바로잡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그 칭호를 높인다는 것은 곧 3황 5제(三皇 五帝)를 합칭한 것이 바로 이것이며, 그 계통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곧 당 나라가 한 나라의 계통을 계승하고 명나라가 송 나라의 계통을 계승한 것이 이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통을 바로잡고 칭호를 높이는 것은 한 나라 이후로 서로 계승한 성대한 전례로서 그 사이에 다른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 우리나라의 의관 문물(衣冠 文物)과 전장 제도(典章制度)는 모두 명나라가 남겨 놓은 제도를 따른 것으로서 찬란하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단(壇)을 설치하고 추향(追享)하여 큰 의리를 세상에 밝히는 것이 어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그 계통을 잇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성자신손(聖子神孫)이 대를 이어오면서 공덕을 거듭 빛내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들의 표준이 되는 것도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폐하께서는 큰 공로와 훌륭한 업적이 고금에 으뜸이 되어 신명(神明)의 도움을 받고 나라의 기반을 다시 중흥하였으며 머나먼 외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하늘의 뜻과 사람들의 마음이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하늘의 뜻과 사람들의 마음에 순응하는 뜻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날에 상림원(上林苑)에서 망배(望拜禮)를 행하고 명나라의 계통을 이어받아서 문덕(文德)를 펴고 선대의 공적을 빛낸다면 하늘에 있는 조상들의 영령들이 또한 캄캄한 저 세상에서 말없이 묵묵히 도와줄 것이니, 이 것은 하늘이 크고 치밀하게 도와주어 대명(大命)을 맞이하여 잇게 해 주는 때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굽어 살펴 대통(大統)을 바로잡고 존호(尊號)에 합치되도록 빨리 수선(受禪)의 의식을 거행하소서. 신 한 사람만의 말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천하 만국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본래 한미한 사람으로서 벼슬아치의 끝자리에 있으면서 외람되게 감히 폐하께 아뢰었으나, 신이 미천하다고 하여 그 말까지 버리지는 마소서.”하니, 비답하기를, “그대만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하였다.



10월 11일 고조(高祖 Gojo:1863 – 1897) 대군주 폐하(大君主 陛下)가 진전(眞殿)에 나아가 전알(展謁)하고 빈전(殯殿)에 전배(展拜)하였다. 왕태자가 따라서 나아가 예를 행하였다. 이러서 황단(皇壇)에 나아가 희생(犧牲)을 살피고 제기(祭器)를 살펴본 다음 그 곳에서 밤을 지냈다. 비서원 경(祕書院 卿) 김영목(金永穆)에게 사직단(社稷壇)과 태묘(太廟)에 달려가서 봉심(奉審)하고 오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시임 대신(時任 大臣)과 원임 대신(原任 大臣) 이하를 인견(引見)하였다.의정(議政) 심순택(沈舜澤),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 궁내부 대신(宮內府 大臣) 민영규(閔泳奎),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영수(金永壽)이다. 고조 광무제가 이르기를, “경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려는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에 모든 예(禮)가 다 새로워졌으니 황단(皇壇)에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하니,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하였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하였다. 고조(高祖 Gojo:1863 – 1897) 대군주 폐하(大君主 陛下)가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고례,백제,신라의 3한국(三韓國)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3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 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 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韓)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 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고조(高祖 Gojo:1863 – 1897) 대군주 폐하(大君主 陛下)가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황단에 행할 고유 천제(告由 天祭)의 제문과 반칙문(頒勅文)에 모두 ‘대한(大韓)’으로 쓰도록 하라.”하였다. 황단(皇壇)을 신축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만들 때와 사직(社稷)의 신위를 고쳐 쓸 때의 도제조(都提調) 이하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 정위 서사관(正位 書寫官) 민병석(閔丙奭), 종향위 서사관(從享位 書寫官) 이범찬(李範贊), 사직 신위 서사관(社稷 神位 書寫官) 이재현(李載現), 영선사 장(營繕司 長) 이근명(李根命), 기사(技師) 김완식(金完植), 청도 경무사(淸道 警務使) 민영기(閔泳綺)는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이근수(李根秀)를 봉상사 제조(奉常司 提調)에 임용하고 칙임관(勅任官) 4등에 서임하였다.



10월 12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왕태자가 배참(陪參)하였다. 예를 끝내자 의정부 의정(議政府 議政) 심순택(沈舜澤)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고유제(告由祭)를 지냈으니 황제위(皇帝位)에 등극하소서.”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으로 장식한 금룡의(金龍椅)에 올라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12장문의 곤면을 성상께 입혀드리고 씌워 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니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가 2-3회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폐하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 전하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국궁(鞠躬), 삼무도(三舞蹈), 삼고두(三叩頭), 산호만세(山呼萬世), 산호만세(山呼萬世), 재산호만세(再山呼萬世)를 창하였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황후(皇后)를 책봉한 것에 대한 고유 별전(告由 別奠)을 지냈다. 황태자(皇太子) 전하도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였다. 종1품(從一品) 민응식(閔應植)을 궁내부 특진관(宮內府 特進官)에 임용하고 칙임관(勅任官) 2등에 서임하였다. 규장각 학사(奎章閣 學士) 이재순(李載純)을 대행 황후 개명정 서사관(大行皇后 改銘旌 書寫官)에 임용하였다.







10월 13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가 빈전(殯殿)에 나아가 조전(朝奠)과 별전(別奠)을 행하고 이어 태극전(太極殿)에 나아가 백관(百官)들의 진하를 받았으며 칙서(勅書)를 반포하여 천하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칙령(勅令)을 내리기를, “나라의 형법(刑法)은 원래 적용을 다르게 할 수 없으나, 이 번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린 것은 오직 죄를 가볍게 처벌하자는 뜻과 관계가 있으니 용서해 주는 은전(恩典)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잘못 적용한 잘못을 범하겠다. 그러니 징역을 살고 있는 죄인 중에서 모반, 살인, 절도, 강도, 간통, 갈취 등 여섯 가지 범죄를 제외하고는 모두 특별히 풀어주라. 비록 여섯 가지 범죄에 속하더라도 혹 정적(情跡)이 의심스러워서 참작해야 할 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니, 재판소로 하여금 심리하게 하여 감형에 해당하는 자는 미결수(未決囚)의 경우에는 판결이 내린 다음에 혹은 풀어주거나 혹은 감형하고, 유배 간 죄인은 일체 심리하여 판결하라. 이대로 거행하여 널리 사면하는 조정의 뜻을 보이도록 하라.”하였다.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가 반칙문(頒勅文)에,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칙령(勅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고례(高禮), 백제(百濟), 신라(新羅)를 통합하였으니, 이 것이 ‘3한국(三韓國)’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4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 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태묘(太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1. 조정에서 높은 벼슬과 후한 녹봉으로 신하들을 대우하는 것은 원래 그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라의 안위(安危)는 전적으로 관리들이 탐오한가 청렴한가 하는 데 달려 있다. 관리들이 간사하고 탐욕스러우면 뇌물이 판을 치게 되어 못나고 간악한 자들이 요행으로 등용되고 공로가 없는 자들이 마구 상을 받으며 이서(吏胥)들이 문건을 농간하므로 백성들이 해를 입는 등, 정사가 문란해지는 것이 실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금년 10월 12일 이후부터 서울에 있는 크고 작은 아문(衙門)과 지방의 관찰사(觀察使), 부윤(府尹), 군수(郡守), 진위대(鎭衛隊) 장관들과 이서, 조역(皂役)으로서 단지 뇌물만을 탐내어 법을 어기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법에 비추어 죄를 다스리되 대사령 이전의 것은 제외한다. 1. 조관(朝官)로서 나이 80세 이상과 사서인(士庶人)으로서 나이가 90세 이상인 사람들은 각각 한 자급씩 가자(加資)하라. 1. 지방에 나가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은 수고가 많은 만큼 그들의 집안에 대해서는 해부(該府)에서 후하게 돌봐 주라. 1. 재주를 갖고서도 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로서 현재 쓸 만한 사람과 무예와 지략이 출중하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대체로 그들이 있는 곳의 해당 관찰사가 사실대로 추천하고 해부(該部)에서 다시 조사해 보고 불러다가 적절히 뽑아 쓰라. 1. 은혜로운 칙서(勅書)에 ‘묵은 땅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장마와 가뭄의 피해를 입은 곳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백성에게 부과된 일정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 있으니, 다시는 시일을 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간혹 이미 다 바쳤는데도 지방관이 별개의 항목으로 지출해서 쓰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착복함으로써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모두 면제하라.



1. 각 처의 주인 없는 묵은 땅은 해당 지방관이 살펴보고 내용을 자세히 밝혀서 보고하면 관찰사(觀察使)가 다시 살펴보고 판단한 다음에 허위 날조한 것이 없으면 즉시 문서를 주어 돈과 곡식을 면제하여 주며, 그 땅은 백성들을 불러다가 개간하도록 하라. 1. 문관(文官), 음관(蔭官), 무관(武官)으로서 조관은 7품 이하에게 각각 한 품계씩 올려 주라. 1. 사람의 생명은 더없이 중하므로 역대로 모두 죄수를 세 번 심리하고 아뢰는 조목이 있었다. 죄보다 가볍게 잘못 처리한 형관(刑官)의 죄는 죄보다 무겁게 잘못 판결한 경우보다 가볍다. 대체로 형벌을 다루는 관리들은 제 의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뇌물을 받거나 청탁을 따르지 말며 범죄의 실정을 캐내는 데 힘쓰라. 1. 모반(謀叛), 강도, 살인, 간통, 절도 등 여섯 가지 범죄를 제외하고는 각각 한 등급을 감하라.1. 각도(各道)의 백성들 가운데 외롭고 가난하며 병든 사람들로서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해당 지방관이 유의하여 돌보아 주어 살 곳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1. 큰 산과 큰 강의 묘우(廟宇) 가운데서 무너진 곳은 해당 지방관이 비용을 계산해서 해부(該部)에 보고하고 제때에 수리하며 공경하는 도리를 밝히라. 1. 각 도의 도로와 교량 가운데 파괴된 것이 있으면 해당 지방관이 잘 조사하여 수리함으로써 나그네들이 다니는 데 편리하게 하라. 1. 칙서(勅書) 안의 각 조목들에 대하여 해당 지방의 각 관리들은 요점을 갖추어서 마음을 다하여 행함으로써 되도록 은택이 백성들에게 미치도록 힘써서 백성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짐의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만약 낡은 틀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한갓 겉치레로 책임이나 때우고 있는 데도 해당 관찰사가 잘 살펴보지도 않고 되는 대로 보고한다면 내부(內部)에서 일체 규찰하여 엄히 처리하라. 아! 애당초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것이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를 시행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니, 세상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하였다. 홍문관 태학사(弘文館 太學士) 김영수(金永壽)가 지었다.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가 각 나라의 공사(公使)와 영사(領事) 이하의 관리들을 소견(召見)하였다. 축하하기 위해 만나뵈러 왔기 때문이다.일본 판리공사(辦理公使) 가토 마스오, 서기관(書記官) 히오키 마스, 1등 영사(領事) 아키스키 사토오, 2등 통역관(通譯官) 고쿠분 쇼타로, 육군(陸軍) 보병 소좌(步兵 少佐) 구와하다 가케다카, 대위(大尉) 노즈 쓰네다케, 미국 판리공사 알렌, 위관(尉官) 킴슨 하워드 쌔튼, 기관(旗官) 제임스, 군의(軍醫) 폴너클리, 고문관(顧問官) 닌스테드, 러시아 공사(公使) 스페예르, 참찬관(參贊官) 가르베르크, 영사(領事) 얼로스포프, 탁지 관원(度支官員) 알렉세프갈필드, 참령(參領) 뜨르멜비츠가, 해군 사관(海軍 士官) 호멜로푸, 교사(敎師) 네르코프, 군의(軍醫) 체리벤끼, 육군 사관(陸軍 士官) 아파나스크시민·구루진기멱쓰나달윽, 프랑스 판사대신(辨事大臣) 콜랭 드 플랑시, 부영사(副領事) 르페브르, 영국 총영사(總領事) 조르단, 서기관(書記官) 오례사, 함장(艦長) 아달우, 고문관(顧問官) 브라운·설필림, 독일 영사(領事) 크린이다. 종1품 이규원(李奎遠)과 종2품 정기택(鄭騏澤)·이교영(李敎榮)·성대영(成大永)·이헌경(李軒卿)·이근풍(李根豐)을 중추원 1등의관(中樞院 一等議官)에 임용하고 칙임관(勅任官)에 서임(敍任)하되, 이규원은 2등에, 정기택 이하는 4등에 서임하였다.
2014-02-10 08: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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