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순씨를 만나게 된다.
자그마치 20여 년 전, 서천에 자원봉사자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개개인이 모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본인 자신도 병을 갖고 있어 몇 차례의 수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보니 남은 삶은 덤으로 얻은 생명이라 느껴 남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8년, 서천에 많은 비로 인한 홍수가 난 적이 있다. 그 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몸으로 때우는 구호물자 운반이나 홍수 피해지역의 일들을 도와주면서 몸은 고되지만 봉사하는 사이 느끼는 행복감이 좋았다 한다.
그런 장소에서 알게 된 개개인이 모여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이름 없는 단체가 되고, 본격적인 자원봉사자라는 말을 듣게 되자, 뭔가 일을 벌인다는 게 목욕봉사였다.
산골에 사는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반찬도 배달하며 대화하다보면, 거동이 불편하여 몸을 씻을 여력도 없는 분들을 접하게 되며 느낀 바였다.
한 번은 자신의 몸도 아프고 정신없이 일하다 한 주 미루어진 할머니 댁 방문은 하늘나라로 이사한 지 딱 일주일이란다.
참 대화하길 좋아하고 늘 사람을 그리워하던 할머니였기에, 너무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는 명순씨.
이런 일이 생긴 후 더 열심히 봉사에 매진하게 되던 중. 이럴 때를 위해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생겼나보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교통사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남을 위해 살았는데 자신에게 생긴 불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팔다리가 성하지 않은 것은 물론, 뇌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아 6개월간의 의식불명으로 부군과 함께 병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에 찾아 온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웃음치료를 배우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러 다니는 틈틈이 발마사지 강습도 받았다.
처음에 자신을 위해 쏟았던 열정과 남을 위한 봉사가 더해져 일을 하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찾아주는 강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보이는 그녀.
가장이 아닌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강사의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자원봉사자다!’ 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병원이나 가정을 방문하며 말벗도 되어주고, 마사지도 해주는 그녀.
이젠 나이 60도 잊은 채 강사로서 제 2의 삶을 살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는 그녀의 미소가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