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교통경찰은 종종 국민의 시비 상대다.
신호위반을 쉽게 인정하는 운전자는 극히 드물다. 일단 우기면 그 후 절차가 복잡해지고, 귀찮아지는 건 운전자뿐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랬다간 몇 가지 위반사항이 추가되어 벌금만 늘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 모 파출소를 방문했을 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잘 보이는 곳에 ‘올해 공무집행방해죄 입건수 : 00 건’ 시쳇말로 쫄만한 문구였고, 경찰관들이 얼마나 매 맞고 사는 지 그 심각성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시민들이 공권력을 경시하는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독립투사, 독재에 대항한 민주투사’의 역사를 가진 우리만의 과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는 공권력이 악(惡)이었기에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은 투사였고, 그들의 피가 지금도 우리 몸에 흐르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우리사회의 가치붕괴 현상과 일련의 문제의식에 기초해, 여야가 뜻을 모아 성장 중심의 물질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일명 ‘이준석 방지법’)’ 제정안을 26일 발의했다. 사회 각계각층에 만연한 비리와 비양심적 행동을 인성교육으로 바로잡자는 취지가 담겼다.
교육의 핵심은 학과가 아니라 인성이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 데서 나온듯하다.
인성교육은 가정과 학교, 사회를 통해 체득되는 것인데, 국가가 법으로 주도하는 시대라니, 조금은 서글픈 대목이다.
또한 붕괴된 공(公)개념을 재건할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공의 발원지인 시민이어야 한다.
국민을 가르치려는 공무원은, 국가개조의 주체는 오로지 공직자여야 한다는 발상을 가진 것만큼 위험하다. 늘 국민에게 묻고 거기서 답을 찾아야 한다.
국민은 국가에 낸 세금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국가에 요구한다는 걸 공무원은 알고 접근해야 한다.
국민이 관공서에서 불만을 토로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걸 경청하고 최대한 국민의 편에서 속 시원히 해결해 줘야 하는 게 공무원의 기본자세다. 물론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아무리 불만이 많은 사람도 민주국가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건 국가이고 공권력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