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교 서천부군수 퇴임…“공직생활, 참 행복했다”
오일교 서천부군수 퇴임…“공직생활, 참 행복했다”
  • 윤승갑
  • 승인 2014.12.3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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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37년 공직생활 마무리, “대과(大過)없이 공직자 소임 다해 보람”
“배려와 봉사, 소통의 마음가짐 잃지 말길” 당부, 서천은 고향 같은 곳

▲ 31일 퇴임식을 앞둔 오일교 서천부군수가 37년 공직생활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사진도움=서천군 홍보담당 오향근 주무관>
(뉴스스토리=서천)윤승갑 기자=이달 31일로 37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오일교(58.사진) 서천부군수.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 그는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삶을 연다. 항상 그랬듯, 오 부군수는 30일 집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기자를 응대했다.
“무슨 인터뷰 식이나…” 손사래 치며 “편하게 차 한 잔 마십시다”며 겸손함이다. 기자는 그래서 더 평생 몸 바쳤던 공직을 떠나는 소회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부군수는 의외로 담담한 어조로 지난 37년 공직생활을 회고하며 공직생활의 마지막 기착지가 된 서천군 부군수로서 지내온 삶을 이야기 했다.
“퇴직하면 시민으로 돌아가 그동안 못 다한 일들(색소폰 배우기, 강의 듣기, 여행 등)을 하고 싶다”는 오 부군수. 그러면서 “집사람에게 밥만 얻어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요리를 배워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며 웃는다. 서천에 대한 애정도 버리지 않고 “아내와 서천(홍원항)에 자주 들러 싱싱한 회 한 접시 먹으며 서천을 잊지 않는 생활을 하겠다”고 덧붙인다. 여느 사람의 삶을 즐기겠다는 계획이다. 오 부군수와 만나 37년 공직생활의 소회와 퇴임 후 계획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37년 공직생활 ‘보람’과 ‘아쉬움’ 교차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1977년 처음 미산면(보령)으로 발령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한 시절을 떠올렸다.
식량증산이 국가정책의 대세였던 공직생활 초기. 이미 설치한 못자리를 주민 모르게 밟아 지금의 ‘통일벼’ 볍씨를 뿌려 감쪽같이 못자리를 둔갑시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민들은 가을걷이 후 수확량이 증가한 후에야 볍씨가 바뀐지 알아차렸다. 다음해부터는 신경 쓰지 않아도 통일벼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이 모든 게 행정 말초신경인 읍.면 공무원들의 수고스러움 덕분이다. 오 부군수도 공무원으로서의 뿌듯함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단다.
‘변화해야 살아 남는다’는 절박한 인식을 공유하고 꾸준한 소통을 바탕으로 주민과 함께 성장하는 것, 긍정의 인식을 심어주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하는 것, 오 부군수가 생각하는 공직자의 역할이고 기쁨이다.
그래서 오 부군수는 “참 행복했다” 말한다.
“행정 말초신경인 면사무소로 처음 발령 받아 ‘나는 언제 면장까지 해보나’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 자리까지 와서 퇴임하게 됐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모두 “주위 고마운 분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며 그동안 살을 맞대온 공직자들과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시간인 지난 37년. 오 부군수는 시원섭섭하다.(웃음)

△‘송곳은 끝에서부터 들어간다’

▲ 오일교 서천부군수가 37년 공직생활의 보람을 이야기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도움=서천군 홍보담당 오향근 주무관>

37년 공직생활, 오 부군수 역시 처음 시작은 지름길로 가려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지름길을 걸을 수 없음을 후배 공직자들에게 알린다.
변화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노력은 공직자의 보람으로 다가온다는 진리를 공직생활 초기에는 체감할 수 없었기에 전하는 말이다.
그래서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공무원, 행정 말초신경에서 근무하는 후배 공무원들을 눈여겨본다. 이들의 마음가짐과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오 부군수의 판단이다.
‘송곳은 끝에서부터 들어간다’는 진리를 강조하는 대목이다.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일을 두려워하면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지혜를 모아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선배 공무원에게 조언을 구하고 협의해야 한다. 협의가 되지 않을 때는 투쟁하라.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 안주는 후퇴와 소멸을 의미한다. 오 부군수는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했다’고 밝힌다.
퇴임을 앞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관리자로 올라선 이후 꾸짖음 대신, 지시 대신 권유로 방법론을 제시해 일할 수 있는 길을 더 열어주지 못함에 자책의 말을 토해낸다. 공직자로서의 열정이 살아있음을 짐작케 한다.

△1년 6개월…‘서천은 고향과 같은 곳’
오 부군수는 2013년 7월 1일 서천부군수로 부임했다.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가 거쳐 온 어느 곳보다 남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아내(정옥화.56)의 고향이고 진짜 고향인 보령 미산과는 지척이다.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서천부군수 부임 후 그래서 더 ‘서천군의 변화’와 ‘군민과의 소통’에 열정을 쏟았는지 모른다.
이를 위해 부임 이후 13일 간의 일정으로 읍.면 순방을 펼쳤을 정도다. 서천군의 현안과 당면과제를 파악해 안정되고 내실 있는 서천군의 안살림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온화한 성품만큼 그동안의 안정적인 내부 살림살이도 후한 평가가 내려진다. 구성원들과 화합하고 소통하며 흐트러짐 없는 군정운영을 펼쳐온 것이다.
“민선 6기 지방선거 당시 무탈하게 권한대행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공직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사의 말을 전한다. 후배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지 못하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더 좋게 만들어 주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짧은 기간 동안 민선 5기, 민선 6기 함께한 두 명의 군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오 부군수는 기자에게 “퇴임 후 아내와 홍원항에 자주 들러 회도 먹고, 바람 좋고, 공기 좋은 서천의 이곳저곳을 돌며 못 다한 데이트를 즐기겠다”고 약속했다.
“서천은 고향과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만큼 서천은 남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하루 뒤면 붉은 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수평선 아래서 새 해가 떠오른다. 이처럼 그 인생에 있어서도 또 다른 해가 떠오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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